5년 전 저와 제 아내가 미국 달라스로 왔습니다. 그 당시 다니던 학교 근처에 홈리스(노숙인)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하루는 월마트에 갔는데 7살이 안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배가 고프다고 일주일치 음식을 구걸하는 피켓을 들고 추운 겨울 날씨에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당시, 생활비가 200불(22만 원) 정도 되는 시기였습니다. 저희도 먹고사는 것이 빠듯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마트에 들어가 일주일치 음식을 샀습니다. 나오면서 음식을 건네며, 어디에 사는지 물었는데 차를 가리키며 차에서 먹고 잔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짠해져서 다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수 있으니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하니 핸드폰이 없답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그렇게 몇 분을 멍하니 서 있으면서, '세상에 수많은 돈은 어디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도 저도 할 말을 잃고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날 이후, 뭐라도 해서 세상에 눈먼 돈을 모아 그 돈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두어야겠다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마치 홍길동이 된 것 마냥 말이죠.
홈리스들이 모여사는 고가 밑 홈리스 집단 주거지역(텐트 시티)의 모습
한국에서는 잉여인간처럼 살면서 딱히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쌓아둔 지식이나 기술이 있을 리 없었죠. 제가 뭘 잘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첫째 동생이 미국에 놀러 왔다가 돌아가면서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신발을 사 갔습니다. X 이키 고 X 희 신발이라는 타이틀로 한국에서 매진된 제품이었죠. 한국에서는 재고가 바닥났는데 신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니 결국 미국에서까지 제품을 찾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온라인 장터에 한번 올려보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40%가 넘는 마진율에 올리자마자 판매 완료였습니다. '이거 돈 되겠다.'싶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구매대행이라는 서비스가 한창 물이 오르던 시기였습니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정품 제품을 저렴한 배송비로 안전하게 배송해주는지였습니다. 그래서, 구매대행 블로그를 만들고 사업 자금이랄 게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들고 온 150만 원 한도의 카드로 신발 몇 켤레를 사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판매를 시작하고 2달 만에 매출 1000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한국에 사업자를 내고 통관과 관련한 공부를 하고 배송회사를 콘택트 해서 저렴한 배송 요율을 받기 위해 협상했습니다. 옥션, 지마켓 같은 오픈 마켓에서도 판매를 시작했고 구매대행을 시작한 첫해에 매출 2억을 넘겼습니다.(구매대행은 대행 수수료가 마진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큰 수입은 없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먹고사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어졌고 그래서, 아내와 함께 초기에 마음을 먹었던 대로 달라스 다운타운에 샌드위치를 싸 들고 가서 홈리스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엔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겠거니 했는데, 샌드위치를 건네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음식에 대한 필요는 크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홈리스가 된 사연도 다양했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은퇴하면서 병이 들어 치료비가 없고 자녀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 싫어 나오게 된 분들, 범죄 이력이 있는 분들, 알코올, 약에 중독되었거나 정신적인 질환이 있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오고 가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느끼게 된 것은 생각보다 많은 수가 다시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데,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고객이 한국인들인데다 모든 업무가 한국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분들이 일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에, 한번 놀러 왔던 첫째 동생이 유학을 한다고 제가 있는 달라스로 왔습니다. 여기서는 한국과 다르게 차가 없으면 감옥입니다. 돈 한 푼 안 들고 온 동생을 위해 최대한 저렴하면서 좋은 차를 서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산이 200만 원 정도뿐이어서 꼬박 두 달을 넘게 온라인에 매물을 검색했습니다. 그렇게 세 달째 되던 때에, 괜찮은 차를 찾았고 구매를 했습니다. 한동안 차를 타보던 동생님께서 차가 너무 불안하다고 컴플레인을 하는 바람에 다시 팔려고 차를 매물로 올렸습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도가 텄었으니까요. 2주일 만에 차를 팔게 되었는데 마진이 상당했습니다. 운동화는 사진 찍고 보정하고 리스팅 해봐야 많이 팔면 10켤레 파는 것이었는데 차는 사진 한번 찍고 보정하고 리스팅 해서 운동화 10켤레 파는 마진이 남았습니다. 이거 돈 되겠다 싶어 두 달간 눈이 빠져라 온라인 매물을 뒤지던 실력으로 시세 대비 저렴하고 좋은 차를 사고팔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고팔기를 하면서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할 수 있으면 더 마진이 커지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 선생님(유튜브)의 도움을 빌어 DIY 정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 유튜버들의 자료는 방대하다 못해 가히 자료의 천국이었습니다. 1년 정도 만에 웬만한 기본적인 정비는 할 수 있게 되었고 차량 외형 복원과 페인트도 시도했는데 꽤 괜찮은 결과물들이 나왔습니다. 차고가 필요해서 차고가 있는 하우스로 이사를 했고 수입도 예상 밖으로 좋았습니다. 놀다가 차고치고 돈 필요하면 팔고 하면서 설렁설렁 유유자적 살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 차를 고치기 시작한 하우스 차고의 모습
하지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하기로 한 이유가 홈리스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었는데 제가 느낀 그들의 필요는 일자리였습니다. 그래서, 하우스 차고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프라인 숍을 차려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왜냐하면, 돈 버는 것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제 가슴이 뛰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의 시온오토바디렌트 자리를 계약해서 생애 첫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빌드업 중인데, 저와 제 아내가 이 비즈니스를 하는 목적 중에 가장 큰 동기와 이유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하고자 하는데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시온 오토를 오픈하게 한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앞으로 달라스 시온 오토 이야기를 풀어갈 예정입니다. 미국에서 비즈니스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저희의 좌충우돌 서바이벌 스토리를 기대해주세요.